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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소헌왕후

제 7대 세조

차남 : 수양대군 (1417-1468)

재위기간 : 1455.윤6-1468.9(13년 3개월)

부인 : 2명 / 자녀 : 4남 1녀

1부인

정희왕후 윤씨

2남1녀

2부인

근빈 박씨

2남

덕종(의경세자)

제8대 예종

(해양대군)

숙의공주

덕원군

창원군

 money.gif 주요 정치사

         1. 수양대군의 정국 전복과 왕위 찬탈

         2. 세조의 강권정치와 문치의 후퇴

         3. [세조실록] 편찬

훈구파 勳舊派】  

조선 세조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한 학자들의 무리. 
  
세조를 도운 공으로 높은 관직에 오르고, 여러 차례에 걸쳐 공신전을 받아 큰 농토를 가지고 있었다. 
  
정인지·신숙주·최항·양성지 등 문필에 능한 학자들로서 편찬 사업에 참여 하는 등, 민족 문화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사림의 등장 이후 토지 문제로 서로 대립함으로써 사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시애의 난, 세조13년(1467)】 
 
조선 세조 때 함경도의 호족 이시애(李施愛)가 일으킨 반란. 

회령부사를 사퇴한 이시애가 세조의 중앙집권 강화정책에 반발하여 아우 시합 (施合), 매부 이명효(李明孝)와 음모하여 1467년(세조 13)에 반란을 일으켰다. 
  
허종(許倧)· 강순(康純)· 어유소(魚有沼)· 남이(南怡) 등의 3만 관군이 이원(利原)의 만령(蔓嶺)에서 반란군 주력부대를 분쇄하였다. 여진으로 도망치려 하던 이시애는 허유례(許惟禮)의 계교로 잡혀 참형되었다.

 money.gif 역사 개요

▣ 세조 (世祖)

  휘(諱) 유(啼). 자 수지(粹之). 시호 혜장(惠莊). 세종의 제2왕자. 어머니는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 비(妃)는 윤번(尹퍽)의 딸 정희왕후(貞熹王后)이다. 무예(武藝)에 능하고 병서(兵書)에 밝았으며, 진평대군(晉平大君) ·함평대군(咸平大君) ·함양대군(咸陽大君)이라 칭하다가 1428년(세종 10) 수양대군(首陽大君)에 봉해졌다. 그가 대군으로 있을 때는 세종의 명령을 받들어 궁정 안에 불당을 설치하는 일에 적극 협력하고 승려 신미(信眉)의 아우인 김수온(金守溫)과 함께 불서(佛書)의 번역을 감장(監掌)하고, 또, 향악(鄕樂)의 악보(樂譜)도 감장, 정리하였다.

  세종의 뒤를 이은 문종이 재위 2년 3개월 만에 승하하고, 12세의 어린 나이로 단종이 즉위하였다. 수양대군은 권람(權擥) ·한명회(韓明澮) ·홍달손(洪達孫) ·양정(楊汀) 등 30여 인의 무인세력을 휘하에 두고 야망의 기회를 엿보다가, 1453년(단종 1) 10월 무사들을 이끌고 김종서를 살해한 뒤 사후에 왕에게 알리고 왕명으로 중신들을 소집, 영의정 황보 인, 이조판서 조극관(趙克寬) ·찬성(贊成) 이양(李穰) 등을 궐문에서 죽이고 좌의정 정분(鄭훗) 등을 유배시켰다. 그리고 밖에 있던 함길도 도절제사(咸吉道 都節制使) 이징옥(李澄玉)마저 주살, 내외의 반대세력을 제거하였다.

  그리고 안평대군을 강화도로 유배시킨 뒤 사사(賜死)하였다. 이와 같이 일거에 실권을 잡은 수양대군은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이조 ·병조판서(吏曹兵曹判書), 내외병마도통사(內外兵馬都統使) 등을 겸하면서 병마권을 장악하고 좌의정에 정인지(鄭麟趾), 우의정에 한확(韓確)을 임명하고 집현전으로 하여금 수양대군 찬양의 교서를 짓게 하였다. 1455년 단종이 선위(禪位)하게 하고 마침내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치적에는 괄목할 만한 것이 많다. 그리고 왕권을 확립한 뒤 지방의 수신(帥臣- 병마절도사)은 그 지방출신의 등용을 억제하고 중앙의 문신으로 이를 대체시키자 이에 반감을 품은 함길도 회령출신 이시애(李施愛)가 1467년에 지방민을 선동하여 길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세조는 이 반란을 무난히 평정하고 중앙집권체제를 더욱 공고히 수립하였다.

  ① 의정부의 정책결정권을 폐지, 재상의 권한을 축소시키고 6조(六曹)의 직계제(直啓制)를 부활시켜 왕권을 강화했으며, 이시애(李施愛)의 난(1467)을 계기로 유향소(留鄕所)를 폐지하고 토호 세력을 약화시키는 등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하였다. 그리고 승정원의 기구는 점차 강화되어 이러한 추세하에서 1468년에는 원상제(院相制)의 설치를 보게 된 것이다. 이 원상은 왕명의 출납기관인 승정원에 세조 자신이 지명한 삼중신(三重臣-신숙주, 한명회, 구치관)을 상시 출근시켜 왕세자와 함께 모든 국정을 상의, 결정하도록 한 것이니, 이는 세조가 말년에 와서 다단한 정무의 처결에 체력의 한계를 느끼게 되고, 또 후사의 장래문제도 부탁하려는 의도에서 설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② 국방력 신장에 힘써 호적(戶籍) ·호패제(戶牌制)를 강화, 진관체제(鎭管體制)를 실시하여 전국을 방위체제로 편성하였으며 중앙군(中央軍)을 5위(五衛) 제도로 개편하였다. 북방개척에도 힘써 1460년(세조 6) 북정(北征)을 단행, 신숙주(申叔舟)로 하여금 두만강 건너 야인(野人)을 소탕하게 하고, 1467년(세조 13) 서정(西征)을 단행, 강순(康純) ·남이(南怡) ·어유소(魚有沼) 등으로 건주(建州) 야인을 소탕하는 등 서북면 개척에 힘쓰는 한편, 하삼도(下三道) 백성을 평안 ·강원 ·황해도에 이주시키는 사민정책(徙民政策)을 단행하는 등 국토의 균형된 발전에 힘썼고 각도에 둔전제(屯田制)를 실시하였다.

  ③ 경제정책에서 과전법(科田法)의 모순을 시정하기 위하여 과전을 폐하고 직전법(職田法)을 실시, 현직자에게만 토지를 지급하여 국가수입을 늘렸다. 또한 궁중에 잠실(蠶室)을 두어 비(妃)와 세자빈으로 하여금 친히 양잠을 권장하도록 하는 한편, 《금양잡록(衿陽雜錄)》 《사시찬요(四時纂要)》 《잠서주해(蠶書註解)》 《양우법초(養牛法抄)》 등의 농서를 간행하여 농업을 장려하였다.

  ④ 성삼문(成三問) 등 집현전 학사들이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하자 집현전을 폐지하였으나 문교면에도 진력하여 제도를 정비하고 많은 서적을 편찬하였다. 그는 즉위 전에 《역대병요(歷代兵要)》 《오위진법(五衛陣法)》을 편찬했으며, 1465년(세조 11)에는 발영 ·등준시(拔英登俊試)를 두고 인재를 널리 등용하였다. 《역학계몽요해(易學啓蒙要解)》 《훈사십장(訓辭十章)》 《병서대지(兵書大旨)》 등 왕의 친서를 저술하고 《국조보감(國朝寶鑑)》 《동국통감(東國通鑑)》 등의 사서(史書)를 편찬하도록 했다. 국초 이래의 《경제육전(經濟六典)》 《속육전(續六典)》 《원육전(元六典)》 《육전등록(六典謄錄)》 등의 법전과 교령(敎令) ·전례(典例)를 종합 재편하여 법전을 제정하고자 최항(崔恒) ·노사신(盧思愼) 등에게 명하여 《경국대전(經國大典)》을 편찬하게 함으로써 성종 때 완성을 보게 한 것은 그의 치적 중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그는 불교를 숭상하여 1461년(세조 7)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고 신미(信眉) ·김수온(金守溫) 등에게 《법화경(法華經)》 《금강경(金剛經)》 등 불경을 간행하게 하는 한편, 《대장경(大藏經)》 50권을 필인(畢印)하기도 했다. 그의 능은 경기 남양주시의 광릉(光陵)이다.

  그리고 세조 즉위 해 8월에 집현전 직제학(集賢殿 直提學) 양성지(梁誠之)에게 명하여 우리나라의 지리지(地理誌)와 지도를 찬수(撰修)하게 하였으며 11월에는 춘추관(春秋館)에서 《문종실록》을 찬진하였다.

Data:mtc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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