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다가 망가진 사람들 중에
정치하다가 망가진 사람들 중에/ 안희환
정치하다가 망가진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그냥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본업에 종사했더라면 큰 업적을 남길 수도 있었는데 어설프게 정치판에 뛰어들었다가 이미지만 구겨진 채 살그머니 사라진 이들이 꽤 있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정치가 좋은 사람들을 망쳐놓은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사실 정치라고 하는 것은 이론이나 대중적인 인지도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권모술수를 쓰지 않고 순수하게 정치를 해보겠다고 결심을 한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정치판인 것입니다. 함께 시궁창에라도 들어갈 생각으로 덤벼들어야지 신사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겠다며 한 걸음 물러선다고 정적들이나 경쟁자들이 박수를 쳐주는 공간은 아닌 것입니다.
공연히 정치에 뛰어들었다가 피해를 입은 사람을 꼽으라면 저는 가장 먼저 김동길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보스턴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사 박사학위를 받은 김동길 교수님은 연세대학교에서서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그 뛰어난 언변과 박식함으로 대단한 인기를 얻었으며 많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만 정치권에 뛰어들었다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사라져간 것입니다.
1992년 국민당 최고위원과 국민당 대통령선거대책위원장, 1994년 신민당 공동대표, 1995년 신민당 상임고문과 자민련 고문, 1996년 자민련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고 현재 연세대학교명예교수와 태평양시대위원회 이사장으로 있지만 이제 이전의 김동길교수님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차라리 계속 교수로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저에게 유우익 교수님의 태도는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대통령과 둘이 앉아 연설문을 쓰는 사람, 대통령 정책에 철학을 담아주는 사람, 대통령이 테니스를 칠 때 멤버 구성을 부탁하는 사람, 대통령 싱크탱크의 책임자 등으로 언론에서 소개하고 있는 유우익 교수님인데 이제 과감하게 정치권을 떠나서 공부에 전념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가 된 후 지금 인수위원회에 줄을 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인산인해입니다. 그런데 이명박 후보의 당선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유교수님이 “인수위원회도 출범하고 공조직이 갖춰졌으니 제 소임은 다 끝난 것 같다. 대업(大業)을 이뤘으니 더 뭘 바라겠느냐”는 의사를 전하고 학교로 돌아간다고 하니 이분은 정말 사심이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명박 당선자가 국회의원 시절인 1994년 세운 개인 싱크탱크 국제전략연구원(GSI) 원장이었던 유우익 교수님, 한반도대운하 공약과 남해안 개발, 서해 평화지대 공약 개발도 주도했던 유우익 교수님, 이명박 당선자의 재산헌납 문제를 마지막까지 상의하고 발표문을 쓴 유우익 교수님, 그래서 ‘이명박의 이데올로그(이론적 지도자)’라고까지 불렸다고 하는 유우익 교수님, 그가 학교로 다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바입니다.
앞으로 유우익 교수님에게 강의를 듣게 될 학생들은 긍지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부의 실세로서 큰소리칠 수 있는 위치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는 후학양성의 길을 걷고 있는 유교수님이기 때문입니다. 명예나 권력을 쫓아 기웃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소신을 가지고 학문의 길을 걷는 유교수님이기 때문입니다. 혹시 장관자리나 그 외의 좋은 조건이 주어지더라도 확실하게 거절하여 교수를 천직으로 여기는 분도 있구나 하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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